
요즘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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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 김영사 - 예스24
“호모 데우스, 이것이 진화의 다음 단계다!”정치, 종교, 문화 모든 구시대적 신화와 인공지능, 유전공학의 새로운 신이 만나 펼쳐낼 최후의 서사시『사피엔스』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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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볍게 집어 들었습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이야기,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것들. 그런데 읽다 보니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멈추게 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앨런 튜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름 뒤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건...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수학자
1940년대,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기계로 전군의 통신을 암호화하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대서양 전투에서 수천 명의 선원이 U보트의 어뢰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영국 정보기관 MI6가 선택한 인물은 케임브리지 출신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습니다. 그는 블레츨리 파크에서 '봄브(Bombe)'라는 전기기계식 해독 장치를 설계해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성공합니다.

역사가들은 이 업적이 2차 세계대전을 최소 2년 단축시키고, 약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평가합니다. 저도 영화로서도, 이런저런 책에서도 여러번 접했던 그 내용입니다.
공학도로서 저는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압니다.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 순수한 수학과 논리만으로 적국의 암호 체계를 붕괴시켰다는 것. 지금 기준으로도 경이로운 일입니다.
영국은 그에게 훈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7년 뒤, 같은 나라가 그를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2. 범죄자가 된 천재
1952년 1월, 튜링의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어의없게도 피해를 입은 튜링 본인에게 아놀드 머리라는 19세 청년과 동성애 관계라는 사실을 가지고 체포해버립니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엄연한 형사 범죄였습니다. 1885년 제정된 '형사법 개정법'은 남성 간의 동성애 행위를 '중대한 외설죄'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법으로 오스카 와일드도 투옥된 바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법에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다."*
— 앨런 튜링, 재판 당시 진술
튜링은 자신의 행위를 숨기거나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감옥, 또는 화학적 거세.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튜링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무슨 연구였을까요? 그 연구를 위해 거세를 택해야 했던 튜링의 모습, 왠지 낯설지 않은 기억이 있네요. 2천년전에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던 사마천....사기.
1년간 합성 에스트로겐을 투여받는 처벌이 시작됐습니다. 튜링의 몸은 여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나오고 심각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보안 허가도 박탈됐습니다. 동성애자는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됐기 때문입니다.
1954년 6월 7일, 그는 침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옆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가 있었습니다. 사과는 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향년 41세.
3. 튜링 테스트의 숨겨진 진실
여기서 하라리의 통찰이 등장합니다.
1950년, 튜링은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Can machines think?"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모방 게임(Imitation Game)'을 제안합니다. 영화, 바로 그 영화랍니다.

면접관이 텍스트로만 대화하며 상대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그 기계는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튜링 테스트라고 부르는 개념의 출발입니다.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이 테스트가 사실 1950년대 영국에서 동성애자 남성들이 실제로 받았던 심문 "당신은 이성애자 남성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튜링은 자신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진짜냐 가짜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하느냐다. 그 통찰이 AI 철학의 근간이 됐습니다.
우리가 AI를 인간처럼 대우해야 하는가를 묻는 그 질문이, 사실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사회로부터 '진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니.
4. 공학자의 성찰
| 연도 | 주요 사건 |
|---|---|
| 1912 | 런던 출생 |
| 1936 | '튜링 기계' 개념 제시 —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기반 |
| 1939–1945 | 에니그마 해독, 2차 세계대전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기여 |
| 1950 | '튜링 테스트' 개념 발표 — AI의 철학적 출발점 |
| 1952 | 동성애 혐의 기소, 화학적 거세 선택 |
| 1954 | 청산가리 중독 사망, 향년 41세 |
| 2013 |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후 사면 칙령 — 61년 만의 공식 사과 |
공학이란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효율, 최적화, 정확도. 그런 것들을 통해 우리 삶을 좀 더 편하고 가치있게, 그러면서도 자연을 보호하며 후손을 위해 현실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그런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튜링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학은 결국 인간의 문제를 푸는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짙어졌습니다. 2차 대전을 끝낸 수학은 위대했지만, 그 수학자의 삶을 지키는 데엔 그 어떤 공식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ChatGPT, 테슬라의 FSD 알고리즘 — 이 모든 것의 이론적 뿌리는 앨런 튜링에게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재를 우리는 살아있을 때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기계가 생각하는가"보다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튜링의 테스트가 진짜로 묻고 있는 것은 AI의 지능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판단 기준입니다.
마무리하며: 질문은 살아 있다
유발 하라리는 말합니다. 튜링은 미래에 컴퓨터가 1950년대의 동성애자처럼 될 거라고 내다봤다고. 컴퓨터가 실제로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일 것이다.
진짜란 무엇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1950년에 나왔지만, 2026년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ChatGPT가 통과하는 튜링 테스트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의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참고 자료】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2014) —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 Alan Turing: https://en.wikipedia.org/wiki/Alan_T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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